'정작 중요한 건 엄청난 즐거움보다는
작은 것에서 즐거움을 찾아내는 자세랍니다.'
18년동안 그리고 어쩌면 영원히 고아원에서 생활을 했을지 모를 '제루샤 애벗'에서 어느날 갑
자기 큰 행운이 찾아온다. 매달 수요일 고아원을 방문하는 평의원중 한명이 애벗을 높게 평가하
고 대학생활과 함께 생활비를 지원해주기로 한 것이다. 이런 커다란 행운을 얻는데 있어 유일한
조건은 한달에 한번씩 감사 편지를 - 답장은 기대하지 않는 - 쓰는 것이었다.
애벗은 고아원을 벗어나 사회에 발을 디디게 된 것만으로 너무 행복해 수시로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보통의 아이들이었으면 높으신 분이라 편지쓰는 것도 쉽지 않고 내용도 딱딱했을 텐데
상상력과 감수성이 풍부한 그녀는 어렴풋이 봤던 그의 뒷모습이 커다랐던 것을 기억하고 자기
마음대로 '키다리 아저씨'라는 호칭을 사용한다. 편지를 쓰며 나름대로 키다리 아저씨의 모습
을 상상하고 답장을 기대하기도 하지만 답장은 오지를 않는다.
소설은 애벗의 키다리 아저씨를 향한 일상생활의 소소한 이야기가 있는 편지들로 이루어져 있
다. 훌륭한 가문의 자녀로 태어나 모든 것을 원하는 대로 얻을 수 있어 감사한 마음을 모르는 친
구를 안타까워 하고, 남들은 이미 다 알지만 자신만 몰랐던 새로운 것들을 알아가는 재미를 느
끼며 아무것도 없는 어린 고아 소녀에서 조금씩 지적인 여자로 변해간다.
'제 생각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은 상상력이 아닐까 싶어요.
상상력이 있어야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거든요.
그래야 친절한 마음과 연민과 이해심을 가지게 되니까요.'
그런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학년 초부터 알게 된 룸메이트의 친척 '저비 도련님'께 조금씩 마음
을 빼앗기기 시작한다. 대학을 졸업한 후 청혼을 받게 되지만 자신의 신분으로는 높은 분과 이
루어질수 없다고 스스로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린다. 하지만 결국 '키다리 아저씨'의 정체를 알게
되고 소설은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책을 읽는 내내 '빨간 머리 앤'이 떠올랐다. 어떤 상황에서도 기죽지 않고 언제나 밝으려 애쓰
며 주변 친구들도 기쁘게 만들어 주었던. 빨간 머리앤도 그랬지만 '애벗' 역시 자신을 혼자 두고
세상을 떠나버린 부모를 원망하기 보다 그녀를 혼자두고 가야만 했던 부모의 심정에 더욱 아파
하는 여린 심정을 가졌다. 그래서인지 살아있는 오늘을 더욱 행복하게 보낼 수 있는것 같다.
'동화'는 아이들이 읽는 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개인적으로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이를 먹더라도 언제나 가슴한 구석에 남아있는 어린시절의 추억들과 살면서 잊고
있었던 것들을 다시 기억하는데 있어 동화책만한 것이 없다. 게다가 이렇게 행복한 미소를 짓게
만드는 책들은 몇번이고 읽어도 즐거운 일이다.
인디고에서 나오는 고전시리즈는 여러 면에서 마음에 든다. 일러스트도 그렇고, 책 사이즈도
그렇고.. 앞으로도 꾸준히 좋은 책들을 많이 나오길 바란다.
무엇보다 김도연이 자라서 이런 즐거움을 함께 느끼게 될 날이 기다려진다.
'세상은 수많은 것들로 가득 차 있으니
사람은 누구나 왕처럼 행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