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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생활/책

끼이이익 "태엽감는 새" - 무라카미 하루키


 1년가까운 시간을 책장 구석에서 숨어지내다가 밖에 나왔는데 이틀만에 다시 책장속에 들어갈 

신세가 된 '태엽감는 새'. 휴가중이었다면, 주말에 읽기 시작했다면 잠도 안자고 네권을 내리 

고 말았을. 어쩌면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다. 책을 읽지 못하는 틈틈이 해결되지 

않는 궁금증에 대해서도 생각하는 등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더욱 내용에 몰입하게 해주

었던 것 같다.


 이미 충분히 현실성이 떨어지는 삶을 살고 있는 '오카다'에게 생긴 정말 말도 안되는 이야기. 

따듯함과 편안함이 없는 단지 서로에 대한 배려만 존재하는 가정. 어느날 갑자기 사라져 버린

고양이. 고양이를 찾기 위해 소개 받게 되는 정체모를 여인. 그리고 아내의 잠적과 함께 본격적

으로 '태엽감는 새'는 시작한다. 아니, 아내가 나가기전 고양이를 찾기 위해 동네를 돌아다니며

태엽감는 새가 존재했을 - 물이 마른 우물이 존재하고, 기이한 모양을 한 석상이 있는 - 빈집을

발견하면서 부터, 어쩌면 아주 오래전부터 이야기는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오래전 읽었던 상실의 시대가 다 기억나지는 않지만 남자와 키스할때 마다 수첩에 적는 '미도

리'는 기억이 난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존재지만 가끔 '이런 여자라면' 이라는 판타지를 품게 만

드는 여자를 무라카미 하루키는 제공해준다. 그리고 나는 역시 그런 '하루키'에게 빠질 수 밖에 

없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음란한 목소리의 여자, 갑작스레 등장해서 남자를 만족시키고 사

라지는 구레타? 마루타?. 그리고 어떤 행동을 할지 알수 없어 무엇인가 기대하게 만드는 가시하

라 메이.


 소설의 진행은 어느순간에서 부턴가 순서없이 뒤죽박죽 되는데 그 속에서 의미를 찾기 위해 - 

전공서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 한자 한자 놓치지 않고 꼼꼼하게 볼수 밖에 없었는데 의심이 

될수 밖에 없는 복선들, 그리고 뒤에서 밝혀지는 사실을 만날때마다 느끼게 되는 짜릿함.이 정

말 좋았다. 상상할수 없을 정도로 잔인하기는 했지만 마미야 중위의 이야기도..


 이야기의 중후반 부터는 우물이라는 공간을 통해 자신의 의식을 제어하면서 생기는 왜곡된 시

공간(?)을 이동하며 무엇이 사실이고, 허구인지, 혹은 둘다 같은 시간에 존재하며 서로에게 영

향을 미치는 것인지.. 이 부분에서는 너무 현실성이 없어서 조금 지루해지는 감이 있었지만 진

실에 거의 다가가며, 빠른 전개가 이루어져 끝까지 몰입할 수 있었다. 그리고 결국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야구방망이와 칼의 치열한 전투 끝에 돌아오게 된 일상. 그렇다고 해도 그의 그녀는 

없지만.


 그런데. 오카다는 굳이 아내인 구미코를 찾아 나서야만 했을까? 6년이라는 긴 시간을 함께 했

음에도 아무것도 알지 못했던 남편이었음에도, 아니 자신이라는 사람을 보여주지 않았던 아내

를 그는 왜 찾아야만 했던 것일까? 수많은 남자와 외도했고, 그를 떠나려는 그녀가 왜 자신을 사

랑한다고 믿어야만 - 진실인지 아닌지는 다 읽고서도 알수 없다.--;; - 했을까. 


 지극히 비현실적인 내용인 '태엽감는 새'. 하지만 비현실은 어딘가에서는 현실로 등장하고, 마

찬가지로 현실 역시 어딘가에서는 비현실로 존재할지도 모르는것이 아닐까? 만약 나에게 갑작

스레 이런일들이 현실로 다가오게 된다면 나는 어떤결정을 하게 될까.?


 아마도. 아니. 100% 가노 마루타와 함께 현실을 부정하고 다른 세상으로 가지 않았을까...


 나중에 다시 오카다가 되어 본다면 그때는 어떤 다른 생각을 하게 될까.?